해외여행을 가서 문화유적지를 찾거나 고궁을 찾게되면 인간이 만든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경이로운 크기의 건축물이 내 뿜는 위압감에 자신도 모르게 압도당할 것이다. 가치를 크기로만 따진다면 한국에서 느껴보지 못한 위대함(?)이랄까? human scale로는 전혀 감이 오지 않는 실로 엄청난 크기의 건축물은 유럽이나 아프리카 그리고 가까운 중국, 동남아 등등 경제적 규모, 자연기후, 인구 여러가지 측면에서 연관성을 찾기 힘든 세계 각지 한국을 제외(?)한 많은 곳에 존재한다. 왜 반만년 역사의 한국에서는 웅장한, 보기만해도 입이 떡 벌어질만한 위대(?)한 건축물을 볼 수 없는 것일까?
나 역시 독일과 프랑스의 고성, 몽쉘미쉘이란 바다위의 거대한 수도원, 이탈리아의 로마 건축물, 중국의 거대한 탑을 보며 "한국은 나라가 작아서, 힘이 없고 소극적인 민족이라서.." 이런 자조섞인 말을 내 뱉으며서 거대한 건축물 앞에 한참을 감탄하고 있었던 적이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세 유럽의 거대한 성, 그리고 가까운 중국만 하더라도 북경의 자금성과 만리장성, 그리고 항주,소주에 있는 60~70m의 거대한 탑들,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 높고 거대한 건축물을 지어야 했을까?
내가 가본 유럽과 중국, 그 곳에서 특히 거대한 건축물이 자리한 곳에서 나는 높은 산을 본 적이 없다.
중국 상해의 최고 해발은 불과 8m밖에 되지 않으니 우리나라 지형이 얼마나 유려하고 굴곡이 많은지 외국을 나가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저만치 멀리서 기차를 타고,혹은 버스를 타고 가다 목적지에 다가서면 지평선 위로 제일 먼저 보이는 성이나 탑을 볼 수가 있다. 평지위에 서 있는 거대한 건축물은 멀리서도 눈에 띄는 시각적으로 랜드마크 역할을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크게 지었기에 눈에 잘 보인다는 점은 이것을 지었을 당시 지배층의 부와 권위를 과시할 수 있는 행위였을 것이고, 이것을 바라보는 피지배층은 하늘에 대한 동경과 함께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지배자를 위대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산세가 험하지 않은 외국에서는 평지위에 높은 건축물을 지었으며 하늘에 최대한 가까워지려는 지배층의 욕구가 이전 것보다 더 높고 더욱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게끔 하였다.
한국의 지배층은 그런 욕구가 없어서 거대한 건축물이 없는 것이었나?
한국에도 7세기 통일신라 시대에는 높은 건축물이 있었다. 황룡사의 9층 목탑은 높이가 80m로 추정되고 이 크기는 중국의 탑 중에서도 큰 편에 속한다. 그리고 미륵사지 석탑은 현재 현재 6층만 남아 있으나 9층으로 추정되며 원래는 쌍탑으로 두개의 미륵사지 석탑 사이로 더 큰 탑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황룡사목탑이 불타 없어진 그럼 왜 지금 남아 있는 거대한 건축물은 없느냐?"
통일신라 시대 이후 건축물과 산이 만드는 지형에 대한 시각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거대함이 만드는 위엄과 상징성을 오로지 건축물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건축물을 감싸는 산에서도 찾기 시작하며 통일신라 이후에는 무작정 건축물만 크게 짓지 않았던 것이다.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는 가볼 수 없으니 조선의 궁궐인 경복궁을 보자.
경복궁 뒤에는 북한산과 북악산이 위치하며 경복궁은 그 산세에 안겨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경복궁을 아주 크게 지었다고 해도 북악산보다 높게 짓지는 못했을테고 최대한 크게 지었다 해도 멀리서는 경복궁보다 북악산이 먼저 눈에 띄었을 것이 당연하다.
멀리서 북악산을 보며 점점 경복궁으로 다가온다. 어느정도 거리가 되면 경복궁의 주문인 광화문에에 다다르게 되고 광화문의 지붕에 가려 북악산을 사라지게 된다. 광화문 안으로 들어서면 홍화문과 근정문이 있고 근정문을 지나면 비로서 근정전이 있고 그 안에 왕이 있게 된다. 북악산에서 시작하여 왕으로 끝나는, "산=왕"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된다. 산세 빌어 왕의 위엄과 권위를 표현하고 그에 어울리는 궁궐을 지었기 때문에 엄청난 크기의 건축물이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