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와 의상은 더 넓은 곳에서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당나라로 가기위해 신라의 항구 당항성으로 향하던 도중 강한 폭풍우가 몰아쳤다.
원효와 의상은 비를 피할 곳을 찾아 해매다 어느 동굴에 다다르고, 그간의 피곤을 달래며 금새 잠이 든다.
잠을 자던 원효는 갈증을 느꼈고 때마침 옆에 있던 물 그릇을 들어 시원하게 물을 마셨다.
그리고는 다시 잠을 청한다. 다들 아는 얘기겠지만 물그릇은 해골바가지였고, 어제의 그 시원함은 이내 구역질로 변하게 된다.

사실은 변하지 않고 거짓말도 하지 않는데 내 마음이 나를 속이는 것이다.

"일체유심조"의 깨달음을 원효는 그때 비로소 얻게 되었다.

원효는 당나라로 떠나지 않고 신라에 남아 귀족중심의 불교를 백성들에게 전파하는데 힘을 쏟는다.

그리고 의상은 당나라로 떠난다.
의상은 중국에서 공부를 하며 "선묘"라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선묘는 의상이 마음에 들었는지 의상이 공부하는 것을 도와주어 의상이 당대의 최고로 권위있는 스님의 수제자가 되는데 제일 큰 몫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의상은 공부를 마치고 신라로 돌아온다.
신라시대의 항해술은 지금과 같지 않아 매우 위험했다.
바다를 건넌다는건 여행이 아닌 목숨을 담보로한 모험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배를 타고 오던 의상은 위험에 처하게 되지만 선묘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그리고 신라에 돌아와서 "부석사"를 짓고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화엄종을  전파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 부석사에 가면 "선묘각"을 볼 수 있을텐데,  그것은 "선묘"라는 여성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각이다.

우리말에 "문 밖이 저승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마을 어귀에는 천하대장군과 같은 장승을 세워 귀신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고자 하였다.

역사의 저편에서 생각해보면 길(道)이란 외부세계와 연결되는 험난 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험난한 길 속에서도 구도(求道)- 즉 '길을 구한다' -를 찾아야 한다.
의상이 그러했고 헤초, 겸일이 그러했다.

혜초는 19세 때 당나라로 떠났고, 인도를 거쳐 중국의 장안에 가서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혜초에 비해 유명하진 않지만 백제의 겸일은 우리나라에 율종을 처음으로 전파한 사람이다.
오히려 의상보다 먼저..^^;;;

그들은 어쩌면 길의 정신을 처음으로 남긴 사람이며, 그러기 위해 금지와 굴복, 자유의 경계를 넘어섰다.
길은 우리에게 이런 정신을 본받으라 한다.

여행은 자기자신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여행은 이전을 소멸하는 새로운 출발점이다.
여행은 나를 비운다.
여행은 축제다.
여행은 자유다.
여행은 전체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여행은 세계와의 만남이다.

'일체유심조'를 마음에 새기고 이제는 떠날 때다.
Posted by 백구씨쥔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