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우주적 사고 2009. 11. 16. 19:51

신발이 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언젠가 신발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하지만 당장은 사지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을 얼마나 자주 해요.
신고 있던 신발은?
몇 달쯤, 적어도 한 달은 이 신발로 너끈히 버틸 수 있다는고도 생각하잖아요.
근데 어느 날, 신발을 사요. 단순히 기분 때문에 날씨 때문에 혹은 시간이 남아서일 수도 있겠죠. 새 신발을 사서 신고 나면 쇼핑백에 담겨 한쪽 손에 들린 신고 있던 신발은 얼마나 시시해요?
죽을 것처럼 시시하죠. 시시하고, 도무지 시시한 거에요.

그러니 누군가는 돌리는 내 등짝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시시했겠어요?
시시한게 싫다고 시시하지 않은 것을 찾아 떠나는 사람 뒷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시시해요?

처음에 시시하지 않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시작하고 보면 시시해요, 사랑은.
너무 많은 불안을 주고 받았고, 너무 많이 충분하려 했고
너무 많은 보상을 요구했고, 그래서 하중을 견디지 못해요.
그래서 시시해요, 사랑은.
그러니 어쩌죠? 신발을 사지 말까요? 옆에 아무도 못 오게 할까요?

하지만 그럴 순 없을 거에요. 그러니까 이런 건 어때요?
시시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확신한 그 지점, 그 처음으로 달려가세요.
그리고 당분간도, 영원히도 사랑은 사랑이기 때문에 별거 아닌 채로 계속 자나 깨나 시시할 거라고, 또박또박 말한 다음, 처음부터 다시.

지구 반대편에 가 있다 생각하고 세상 모든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Posted by 백구씨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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