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우주적 사고 2007. 5. 31. 03:02

 [독후감 리스트]

  1.  백범일지 (김구)
  2.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 (김산해 / 휴머니스트)
  3.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4.  전쟁과 평화 (톨스토이)
  5.  삼국유사 (일연)
  6.  한국의 문화유산 (최정호 / 나남)
  7.  백석 시전집 (백석 / 창작과비평사)
  8.  ‘싯다르타’, 혹은 ‘유리알 유희’ (헤르만 헤세)
  9.  구약전서
 10.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정민 / 김영사)
 11.  인류의 오디세이 (만프레트 바우어, 구드룬 치글러 / 삼진기획)
 12.  나르시스의 꿈 (김상봉 / 한길사)
 13.  한국 철학 스케치 1 (한국철학사상연구회 / 풀빛)
 14.  연암집 1~3 (박지원 / 돌베개)
 15.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사이드 / 교보문고)


 난 지금 우리 선조 들의 그림자 끝을 밟고 그분들을 쫓아 머나먼 여행을 다녀왔다. 그 여행은 조금 길었지만 나에게 많은 세상들을 구경 시켜 주었고, 많은 것을 알려 주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지식의 양분이 너무나도 미약했기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더 많았던 것 같지만, 우리 선조 들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겁고 행복할 뿐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책 내용 자체에만 매달려서 어렵다는 생각만을 했었는데 점점 책을 읽어가면서 그 시대의 여러 가지 상황들이 보이고 그 속에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또한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옛날 얘기처럼 재미있게 해주셨던 사실들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지난번 한국고대국가 수업시간에 삼국유사에 수록된 단군신화 부분을 찾아보면서 역자들마다 약간 다른 입장에서 역을 했다는 것을 느꼈었다. 각 역자들의 머리말을 읽어보기는 했으나, 이 차이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확실히 알지 못했었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도 듣고 이번에 2~3권의 책을 비교해 보고 난 후 그 입장 차이에 대해 확실히 알게되었다.

국문학자가 쓴 삼국유사와 한문학자가 쓴 삼국유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에 어떤 입장에서 이 글을 읽어야 제대로 읽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어떤 시각으로 삼국유사를 바라봐야 하는지 잘은 모르겠다. 아직 역사에 대한 이렇다할 맛도 보지 못한 것 같아 섣부른 생각을 가지는 것 보다 앞으로 더 많은 공부를 한 이후에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이 두 입장에서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처럼 삼국유사 속에는 우리나라 고대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들이 너무나 많이 들어있었다. 이러한 귀중한 책이 남아 있었기에 우리들이 그 시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저술하셨던 시기는 고려 충렬왕때 원나라의 간섭을 받고 있었던 때였다. 그 당시 무신정권의 전횡은 계속 되었으며, 왕권은 미약했고 원나라와 고려의 관계는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백성들은 더욱 살기 어려워 졌을 것이고,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는 시대였을 것이다. 이때 일연 스님은 우리 민족에게 자주의식을 심어주고 그로 인해 우리민족의 원동력을 찾고 원에 맞설 수 있는 힘을 키워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자주적 입장에 서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버금갈 만한 유구한 역사 민족임을 일깨워 주기 위해 삼국유사를 저술하셨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민족주의적 색채가 너무 강하다고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그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처했을 때 민족주의가 나타났었다는 것을 생각해야할 것이다. 오히려 일연 스님이 내세운 민족주의는 다른 민족을 배제하는 속에서 찾은 우리민족이 아닌 다른 민족과 화합하는 속에 찾은 ‘민족’ 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려고 했던 것이 아닌 백성들에게 우리 민족의 뿌리를 일깨워 주기 위함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 어떻게 보면 신비한 내용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황당하고 비합리적인 얘기들이다. 이러한 부분들이 있기에 삼국유사 자체를 그동안 낮게 평가했었던 것 같다. 지금의 우리들도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일연 스님도 이런 생각을 분명 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삼국사기에 빠진 옛 기록들을 원형 그대로 놓아 보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으셨던 것 같다. 물론 그 기록들이 비록 황당하고 부풀려진 내용이 많이 들어 있지만, 이 또한 우리의 한 부분이고 우리 민족이 알고 있어야할 이야기인 것 같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다른 나라들의 경우를 보아도 왕조가 새로 개창 되거나 선조 들의 이야기를 쓰는 경우에는 그 분들의 일반인과는 뭔가 다른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과장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러한 신성스럽고 비범한 모습들이 있었기에 새로운 왕이 될 수 있었다는 정당성을 부여하고, 우리 민족은 이런 선조 들을 계승하는 자랑스러운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삼국유사를 읽어 나가면서 내가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에게 들었던 얘기와 다른 책을 통해 읽었던 내용들이 많아서 너무 신기했었다. 그동안 누군가가 꾸며낸 얘기라고 생각하며 그 생각의 기발함에 놀랐던 얘기들이 우리나라 선조 들의 얘기였을 줄은 정말 몰랐었다.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48대 경문왕 때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라고 숲에서 외쳤던 이야기이다. 난 지금까지 이 이야기는 외국에서 전래되었거나 외국 작가가 지은 것이라고 너무나도 굳게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동화책에서 먼저 읽었기에 그냥 이렇게 생각해버렸던 것 같다. 어디에선가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나 얘기들 중에 우리 고유의 것인데 외국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아마 나처럼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잘못 알고 지나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앞으로 이런 부분은 제대로 확립되어 우리의 재미있고 좋은 얘기들을 어린아이들이 제대로 알고 익힐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로 귀중한 자료인 삼국유사 이지만, 읽으면서 신라 사료가 많고 다른 나라 사료들이 적은 듯 해서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역사학자가 아닌 스님으로서 정확한 연대를 알고 기록한다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고, 자료 수집에 있어서도 그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팔도를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연구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일연 스님이 자랐고 생활했던 고장을 중심으로 얘기를 전개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고 많은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의 기록들이 많지 않아 치우친 감이 없지는 않지만, 다른 나라의 기록들이 있는데도 쓰지 않았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라에서 편찬하는 사서가 아닌 일연 스님 개인적으로 저술활동을 하는 것이었기에 여러 나라의 자료를 구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일연 스님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삼국유사를 통해 알게된 그 분의 모습은 세상일과 동떨어져 살았던 것이 아니라 사회에 관심을 기울이고 역사와 함께 호흡하면서 사셨다는 것이다. 그 시대가 요구했던 바를 정확히 알고 실천 하고자 노력하셨던 것 같다. 스님의 이런 앞서가는 모습들이 있었기에 삼국사기에는 들어가 있지 않은 우리 선조 들에 대한 독창적인 기록들이 많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어느 순간부터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사극을 참 좋아하기 시작했다. 사극 속에는 다른 드라마들처럼 마냥 허구적이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들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희극적 요소의 가미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었던 지식들을 사극을 보면서 다시 확인해 볼 수 있고, 한가지 사건이 아닌 여러 가지 사건들이 결합해서 그 결과가 나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끔 연기자들의 연기를 보면서 그 시대의 그 인물의 성격이나 모습들이 그러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고 역사 속의 진주 같은 인물들의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어렸을 때 접했던 사극들보다 많이 발전하고 그 스케일도 커지고 점점 그 구성도 짜임새 있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만큼 좀더 제대로된 사극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아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뿌듯함을 금할 수가 없다. 이런 분들의 노력이 계속 되는 한 내 사극 사랑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이 과제를 하면서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만큼 쉽지 않았던 부분도 많았지만,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어쩌면 여태까지 역사에 대한 단편적 사실들만을 나열해서 알아 왔는지도 모르겠다. 각 퍼즐들의 조각조각은 알았지만, 그 퍼즐을 맞춰 봐야 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그만큼 생각의 폭도 좁았던 것 같고 생각하며 바라보는 역사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내 스스로 뭔가 생각해보고 느껴보고 해냈다는 성취감도 크지만, 더 큰 과제를 안고 풀어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어쩌면 앞으로 내가 지금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 이상으로 더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들보다 늦고 더디게 갈지라도 언젠가는 그 산을 넘을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과 희망이 생긴 것 같다. 이제 다시 우리 선조님 들의 그림자 끝에 매달려서 더 재미있고 기나긴 여행을 다녀와야겠다.

Posted by 백구씨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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