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 김정호

우주적 사고 2006. 12. 13. 14:09
책도 더 찾아보고 글의 구성도 맞춰봐야하는데,
시간도 없고, 오전 수업중에 급하게 만들어 본 지리학 개론 1번 답안....
으아~ 4시 시험인데, 2번 답안 빨리 만들어보자!!!
지명이랑 연도 외우기 힘들어..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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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김정호 선생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리학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가 만든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의 고지도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지만, 정작 김정호 선생에 대한 자료나 그가 지도나 지지를 제작하는 과정 등은 잘 밝혀져 있지 않다.

이견이 있지만 김정호 선생은 <청구도>, <동여도>, <대동여지도> 등 3개의 지도와  <여도비지>, <동여도지>, <대동지지> 등 3개의 지리지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지도를 만들기 위해 지도를 구성하는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필요했고 따라서 지도에 맞는 지리지를 하나씩을 제작했던 것이다.

그가 남긴 3개의 지도는 우리나라 전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전국지도로 여러 유형의 지도를 바탕으로 하여 제작된다. 그러므로 전국지도는 각 유형의 지도의 종합이며 제작 당시 지도학의 수준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정호 선생이 제작한 <동여도>의 제작시기가 현재 논란을 낳고 있으나 각각의 견해는 어디까지나 전문가의 추정이지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미약한 실정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김정호 선생은 1861년 간행된 <대동여지도>를 3년 밖에 지나지 않았던 1864년 재간하면서 그 사이에 오류라고 판단한 내용을 교정해 넣을 정도로 철저한 사람이었다. 재간본에서 보여준 오류교정 노력은 시기적으로 변화된 내용을 정확하게 지도에 반영하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김정호 선생은 <동여도>를 제작 할 때에도 정확한 내용을 담으려 노력했을 것이고,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에 수록된 지명의 시기적 변화양상을 꼼꼼하게 검토한다면 제작된 시기를 추정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여도비지>에 "인증"이 경기도 교하군에 기록되어 있다. 반면 <대동지지>에는 경기도 광주군에 기록되어있는데 김정호 선생은 <여도비지>와 <대동지지> 제작 사이에 새로운 자료를 통해 "인증"의 이장사실을 확보하여 교정했던 것이 분명하다. 실제 "인증"의 이장은 철종 7년(1856년)에 있었으므로 <동여도>가  1856년 이후에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함경도 장진의 시기적 양상을 통해 <동여도>의 제작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
장진은 1665년 처음 설치되어 1785년 진으로 승격된다. 이어서 1787년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1843년 다시 진으로 강등된다. 그리고 1859년 다시 도호부로 승격된다. 이와 같은 내용이 <대동지지>에는 기록되어 있으나 <여도비지>의 장진도호부의 건치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1861년 간행된 <대동여지도>에는 장진도호부의 진으로의 강등사실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1859년 이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목판으로 제작된 <대동여지도>에 표시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동여도> "今降鎭"이란 문구이다. "지금은 鎭으로 강등되어있다."는 뜻으로 <동여도>가 1843년과 1859년 사이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여도>와 <대동여지도>중 우선 제작된 지도에대한 논란은 용궁현의 읍치를 통해 답을 얻을 수 있다.
<동여도>에 "읍치"라고 표시되어 있던 곳에 <대동여지도>에는 "전읍"이라 기록되어 있고 그 서북쪽에 "읍치"가 표시된 것으로 보아 <대동여지도>가 <동여도>보다 늦게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Posted by 백구씨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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